<회피형 인간은 도망치지 않을 때 치유된다>
누군가의 사랑과 신뢰를 받을 수록 답답한 마음이 든다. 그건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조직에 녹아들고 사람들과 가까워질 수록 기분 좋은 마음과 동시에 올라오는 두려움. 그 두려움의 이면에는 머릿속에 끊임없이 재생되는 화면이 존재한다. 오늘은 좋게 나랑 웃으면서 이야기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정색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순간, 나에게 차가워지고, 그들끼리 연합해서 나를 밖으로 배척시켜버리는 화면. 마치 나는 스스로가 누군가가 좋아할 만한 사람이고, 오래도록 교류하고 싶은 사람일 수 있다는 걸 믿지 못하는 것 같다.
오늘은 매장 내 이번 달 친절사원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기분 좋은 마음에 연이어 찾아오는 불편감. 앞으로 한 순간이라도 친절하지 않았다가 멀어지면 어떡하지, 나를 좋아하는 건 내가 오늘 그에게 다정하고 살갑기 때문이었다면 그때 그들은 다시금 실망하게 될 것이 아닌가?
가까워질 때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그 역함은 심리적인 걸 넘어서는 것 같다. 몸이 굳는 게 느껴지고, 어떤 생존기제처럼 지금이라도 도망가고 싶은 듯 발이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의 반대편을 향하고, 누군가 팔짱이라도 끼거나 몸이 닿으면 어찌할 바를 모른다. 분명 어제 함께 같은 시프트를 하며 기분 좋게 하루를 같이 보낸 사람인데도,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것 처럼 느껴지면 경계벨이 울린다.
그래서 어제까지도 살가웠던 나는 그 다음 번 만나서 마치 좁혀진 거리가 없었던 일이기라도 한듯 더 예의있게 말하고, 더 거리감 있게 다가가고, 점심시간에는 괜히 혼자 휴게실 가서 쉬고 오겠다며 좁은 공간에 함께 붙어있어야만 하는 시간을 줄인다. 예전에 누군가는 이런 나에게 함께 있을 때는 천사같다가 그 자릴 떠나고 나면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고 표현한 적이 있다. 이런 저런 영상에서 이런 사람을 회피형 인간이라고 부르던데 사실 내가 생각해도 부합하는 점이 많은 것 같다.
이런 회피성 성향을 가진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관계가 조금이라도 어긋난 것 같으면 그걸 다잡거나 개선해보겠다는 의지 대신,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떠나서 완벽하게 새로운 사람들과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힌다는 것이다. 혹은 더 나아가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고 온전히 혼자인 곳에 숨어들어 웅크리고 있고 싶다는 강한 충동.
그렇다 보니 어떤 직장에 가도 한 곳에서 오래 머물지 못하고 1년 4개월이 최대였다. 지금은 이 곳에서는 1년 8개월에 접어들고 있다. 남들에게는 이조차도 짧은 시간이겠지만 나는 이 시간 동안에도 어떻게 하면 지금 당장 도망갈 수 있을까 수십 번은 생각하고 괴로워했던 것 같다.
다만 바로 몇 년 전 대책 없이 그만 두고는 엄청나게 고생하고 나서 앞으로는 그러지 말자고 결심했었고, 그만두고 싶다고 하늘에 징징거려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아직 때가 아니라는 거 알잖아.” 라는 더 큰나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지금껏 어디서도 성실하게 최선은 다하지만 절대 섞이고 싶지 않아했던 나였는데, 여기 겨우 일곱 명 모인 작은 공동체는 내가 처음 입사하자마자 내 가정사를 물어보고 인스타그램도 팔로우하고 싶어했다. 집들이에 초대하고 싶어하고 소개팅을 시켜주고 싶어했다. 내가 생각한 직장동료와의 선 이상이었기에 나는 그런 게 낯설었고, 적당히 둘러대고 내 할 일을 하자며 속으로 되뇌었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의 조직에서 거진 2년 가까이 있다 보니 시간 속에서 속절없이 나 자신을 드러냈다. 나의 바보같은 모습, 무능하거나 나태한 모습, 사랑스러운 모습까지. 어떤 모습을 보이고 나서 도망가고 싶은 충동을 견디고 돌아오면, 모든 게 다시 또 괜찮아져 있었다. 그들은 나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지 않고, 내가 어떤 것은 좋아하고 어떤 것은 싫어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이해하는 말들을 했다.
“예원님 낯설죠? 저기 가서 저 사람들한테 인사해요. 내가 먼저 앞장 설게요.”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이 주변 사람들을 차분하게 해요.”
“지금이 딱 실수 많을 시기예요. 너무 많이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이러한 과정에서 어릴 적 부터 붙잡고 있던 견고한 믿음 옆에 한 갈래의 믿음이 새로 생기고 있는데, 아마도 언젠가 내가 이곳을 떠나는 순간이 온다면 그들이 내가 두려워하던 얼굴들이 아닌, 즐거웠고 정들었는데 아쉽다는 얼굴을 하고 나를 바라볼 것이라는 믿음이다. 가끔은 내 믿음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하는 데이터가 많아질 수록, 생각이 만들어낸 두려움 속으로 걸어들어갈 수 있게 된다.
내가 새롭게 심은 믿음의 씨앗에서 피어오른 새싹은 나에게 이런 선물을 줄 것이다.
나는 이만큼이나 오래 노력해볼 수 있는 사람이야
나는 사람들과 감사하며 헤어질 수 있고, 헤어지고도 또 만날 수 있는 사람이야
나는 평생을 응원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사람이야
혼자서 공부하고 노력하고 해왔던 시간들이 좋았던 적이 있었다면 나는 이제 사람들 틈에 둘러싸여 지내는 것이 좋다. 누군가에게 신뢰할만한 사람이 되고,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노력으로 관계를 만들어나가며 그안에서 끝없이 나를 확장해나가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