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적인 나를 강하게 만드는 것 : 감정
나는 이렇게나 오랜 시간동안 한 사람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깊은 수치심까지 닿았다가, 하늘을 나는 듯한 고양감을 느끼고, 간절했다가, 좋아했다가, 그리워한다. 그리고 허무함, 무가치함, 열등감, 초연함, 서운함, 깊이 믿는 마음까지. 어떤 사람은 존재 그 자체로 내 안의 잠들어 있던 감정들을 샅샅이 깨워, 내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한다.
예전에는 내가 이런 감정들을 고통스러워한다고 생각했다. 잠잠할 날 없이 늘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 같은 감정들이 언제쯤이면 사라질까. 언제쯤에야 안정될 수 있을까? 하고.
그런데 이제 나를 조금은 알겠다. 나는 그런 몽상 속에서, 상상 속에서 아주 즐거워하는 사람이라는 걸.
노래 한 소절에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더니, 갑자기 어떤 책을 읽고는 세상에서 제일 당당한 사람처럼 스스로를 느끼곤 한다. 순간순간 변화하는 생각과 감정들 속에서 나는 매번 다른 나를 경험한다.
나는 삶에 끊임없이 감성을 불어넣어 주어야 생기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다. 나를 꽉 채운 감정들을 다루기 위해 책도 읽었고, 심리학도 공부하고, 글도 쓰고, 명상도 했던 듯 하다. 내 안에서 표현되지 못한 에너지들은 어떻게들을 어떻게든 다른 형태로 표출할 수 있는 길을 찾았고, 감정의 혼란 속에서도 나는 결국 하나 하나 의미를 붙이고 구조를 만들어 그것들을 다루는 방법을 배워왔다.
풍부한 감성 덕에 어떤 일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아도 노랫말로, 글로, 상상으로 수없이 다양한 종류의 감정을 경험하고 제련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런 상상을 펼칠 수 있는 사람, 환경을 늘 찾아다녔지 않았나. 모든 게 명확하고 안정적인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나는 금방 생기를 잃고 시들해져갔다.
반대로 요즘은 경험해보지도 않고 감정 속에서만 살다가 지레 겁먹고 손놓아 버리는 일이 없도록, 이제 그런 감정들을 꺼내어 현실로 만들어가는 시도를 조심스레 해보는 단계에 있다. 생각을 계획으로 옮기고 매일 매일 실천하고, 아주 지루한 현실에도 발붙이고 살자고 결심한 것이 최근의 일이다. 현실적인 목표와 행동으로 꽉꽉 채운 시간들이 금붕어가 물밖에서 숨을 쉬듯 아직은 익숙하지 않다 보니 또 자주 나의 <환상공간> 속으로 숨어들지만 말이다.
감정형 인간들은 잘 다루는 연습만 한다면 감정이 큰 무기가 되는 것 같다. 중년이 되도록 자기 자신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은데 우리는 거리낌 없이 울고 자신이 무얼 좋아하는지도 알고, 감정은 감정대로 느끼지만 그것들에 쉽게 압도되지 않을 정도로 성장할 수도 있다. 그래서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해서도 이해의 폭이 넓다.
왜 내가 퇴근만 하면 헤드셋을 끼고 큰 소리로 노래를 틀어놓고 세상과 분리되고자 했는지, 음악에 정신을 맡기고 그렇게 취한 듯 머물렀는지. 그 시간은 도망치는 시간이 아니라 이성 99%로 채워진 현실에서는 숨쉬는 게 서툰 금붕어가 안전하게 머물다가 다시금 밖으로 나가기 위한 충전의 시간과도 같았던 것 같다.
그 감정들 안에서 숨을 허덕이던 시간은 역설적으로 인생에서 감정이라는 나의 무기를 갈고 닦아올 수 있도록 도와준 존재였던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