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광저우 여행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혼자 차마시며 느꼈던, 추욱 가라앉는 그 느낌. 땅에 딱 붙어 안정적인 그 느낌이 좋았었다. 그 후로는 한국에서도 종종 차실을 찾아 다닌다.

이번엔 휴무에 가봐야지 하고 찜해둔 문래의 <아도 티하우스>에 다녀왔다.

그날 따라 몸이 무거워, 문래까지 갔다가 괜히 지쳐 돌아오면 어쩌지 싶었지만 일단 가봐야 지칠 지 좋을 지도 알 수 있으니 가보기로 한다. 대신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가방에서 우산도 빼고 노트북도 빼고 몸만.

문래에 내려 걷고 있는데 갑자기 후둑 후둑 비가 떨어진다. 비올까봐 바리 바리 우산을 들고 다닐 때는 오지도 않더니, 몇 개월만에 우산을 두고 오니 갑자기.

헛웃음이 나왔지만 비 맞으면 시원하다는 장점 외에 다른 게 뭐 있겠나 싶어 그냥 걷는다. 앞으로도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며 고생하지 말자.

차실을 몇 미터 남겨두고 쏟아붓기 시작한 폭우를 피해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 차실 안에서 보는 비오는 창밖은 운치있기만 했다. 결국은 차 마시기에 딱 좋은 날씨가 되어버렸다.

차를 고를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1.현재의 감정 상태에 매치되는 차를 선택

2.좋아하는 원산지에 따라 차를 선택

3.마지막으로 ‘차방전’이라고, 현재의 감정 상태를 자유롭게 써서 내면 그에 어울리는 차를 추천받을 수 있는 방법

차방전이라는 게 왠지 신박하고 귀여웠지만, 왠지 내 감정 상태를 처음 만난 사람에게 써서 주는 게 어색해서 나는 감정 상태에 따른 차를 선택했다.

요즘은 즐겁고 재밌는 게 좋아서 즐거울 락 - 홍차.

찻잔도 선택할 수가 있었는데, 요즘은 투명하게 나를 드러내는 것이 좋아서 투명한 유리 찻잔.

꿀향이 나는 밀봉홍차(蜜香紅茶)를 준비해주시면서 간단히 차기들을 쓰는 방법을 설명해주셨다.

맛을 보니 진짜로 크리미하고 달콤한 것이 꿀을 섞은 것처럼 느껴졌다.

15초를 우리라고 하셨는데, 나는 더 연하고 부드럽게 마시고 싶어 10초 정도만 우렸다.

바에 앉아서 마시니까 차를 마시는데도 니트잔에 위스키 마시는 느낌이 난다.

허리 곧게 펴고 엄격한 절차 아래 차를 마셔야 하는 일본식 다도같은 건 나는 금세 지루해질 것 같고, 난 그냥 술인지 차인지 모르게 내 멋대로 마시는 느낌이 좋다.

맛보라고 주신 쑥차도 있었다. 쑥을 덩어리로 뭉쳐서 차를 우린 거라고 하는데, 진짜 쑥개떡 향이 솔솔 나는 것이 향만으로도 먹음직스러웠다.

앉아서 멍때리다가, 떠오르는 생각들은 조각 메모로 남기고, 헤드셋 끼고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를 끝까지 정주행했다. 받아적고 싶은 대사가 어찌나 많은지.

일층에는 작은 명상실이 있고, 몇 계단을 올라가면 프라이빗한 공간인 다락방이 나온다. 다락방은 예약을 해야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다음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오고 싶다고 생각했다.

주전자의 물이 빌 때쯤 어느새 비가 그쳐, 오랜만에 서울 산책을 제대로 했다.

차로 이름 날리는 중국이나 대만이나 그렇게 오래 살아놓고 그때는 관심이 없어 가보지 못했다니, 다음에 다시 가게 된다면 꼭 여러 좋은 찻집 많이 다녀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