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인 사람이 기억할 점 : 아이디어는 시간순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어제는 잠자러 가기 전 불안해졌다.

때로 고요히 혼자 있는 시간에 번뜩이듯 찾아오는 수많은 아이디어들로 인해,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 모든 걸 다 해내기에 젊음은 유한하고 시간은 부족한 것 같은데, 어떻게 그곳까지 갈 수 있을지 의심이 생겼다. 그럴 땐 그냥 노트북을 탁 닫아버리고, 일단 자고 내일 다시 생각하기로 한다.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들은 반드시 우선순위를 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반드시 시간순이 아니며, 반드시 지금 당장 실행해야 하는 것들이 아니다.

시간순으로 보았을 때 내가 지금 A 지점에 있는데 D 단계가 되어서야 알 수 있는 것들이 먼저 아이디어로 올 때도 있고, E에 있는데 과거 B 지점에 있을 때 겪었던 일들의 의미가 퍼즐처럼 맞춰지며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나를 예로 들면 나는 A에서 F로 오는 동안 여러 가지 새로운 경험들을 했다. 그 중 어떤 경험은 내가 그 경험과 연관이 없는 아주 이전부터 일찍이 어떤 직감으로서, 내가 곧 그걸 경험하게 되겠구나 라는 앎으로 찾아온다. 이미 목적지는 알고 있는데 어떤 단계들을 거쳐 어디에서 어디로 나아가 언제쯤 그 곳에 도달하게 될지는 모르는 것이다. 언젠가 진짜 그 경험에 도달하게 되면, “아 이런 방식으로 그 일이 일어나는 거였구나” 하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난 4년 전 우연히 <국제관계학>이라는 키워드를 알고,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지만 내가 언젠가 그것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게 될 거라는 직감이 있었는데, 번뜩였던 직감과는 달리 현실에서는 정치, 외교 그런 것들에 전혀 관심이 가지 않았다.

언젠간 그걸 내가 실행력이 부족하고 생각만 할 줄 아는 사람이라서 그런 건 아닐까 바보같이 여겼던 때도 있었고, 억지로 정치에 관련된 책을 읽어보려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저항감이 들고, 재미가 없고, 애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다 그 아이디어마저 내려놓고 현실에서 오늘 할 일을 하며 살다 보니, 오히려 최근에 들어서야 다시 그 직감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4년 전 나는 국제관계학이라는 거시적이고 외향적인 학문의 결과는 달리 지극히 내향적이고 개인적인 사건들에 매료되어 지냈었다. 그러다 우연히 외국에 가서 호텔리어가 되었고, 내가 알던 모든 것과 단절했었고, 분석심리학을 알게 됐고, 그렇게 계속 자신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마치 오랜 시간동안 내면만을 향했던 것에 대한 반작용 때문인지 또 자연스럽게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고, 좀 더 거시적인 관점으로 사회를 보고싶다는 욕망이 생기는데, 그 키워드가 자연스럽게 국제관계학과 겹쳐지는 현상을 보게 된다.

E에서 F로 나아가는 것은 한 계단을 폴짝 올라타듯 간단한 일인데, A에서 F로 한번에 멀리뛰기하려 드는 것은 영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면, 적어놓고, 바로 지워버려야 한다. 시간 순으로 오지도 않는 두서없는 아이디어들을 무엇이든 다 놓치지 않고 붙잡고 있으려 한다면, A에서 F로 나아가기 전 거쳐야 하는 단계들을 정상적으로 밟을 수 없게 된다. 떠오른 아이디어는 나아갈 방향을 넌지시 알려주는 축복으로 알고, 그렇다면 다시 현실로 돌아와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우선순위를 정해 아주 작고 작은 단위로 쪼개서 해나가는 연습을 해야한다.

그러다 문득 뒤를 돌아보면, 한때 노트에만 적혀 있던 아이디어가 어느새 내 삶의 일부가 되어 있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