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의 한 가운데서 느낀 것>
이 일이 지겨워진지는 좀 됐다. 지금 이미 인생 최장 기간을 경신하여 일하고 있기에, 나에게도 꽤나 새로운 감정이다. 예전에는 권태로움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찰나 불나방처럼 또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버리고는 했기에, 이 권태로움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떤 차원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 가만히 지켜본 적이 없었다.
처음에 ‘조금 지겨운데?’에서 시작한 마음은 시간이 흐를 수록 당장이라도 하던 걸 다 던져 버리고 소리 치고 싶은 정도의 답답함이 되었고, 음식을 턱밑까지 채우고 맞지 않은 옷에 몸을 우겨넣은 듯 토할 것 같은 마음도 들었다. 권태로움 속에서도 (하기 싫지만) 해야하는 일들을 해야 하는 상황은 고통스럽게 느껴져 출근하기 전부터 짜증이 났다. 계속 그렇게 짜증이 난 채로 있으면 힘이 드니까 나름의 생존 방식을 찾아 감정을 느끼지 않고 일을 하자고, 일에 무슨 기대를 그렇게 많이 하냐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다 아우성 치는 권태에 반응하지 않고 차분하게 할 일을 하나씩 해나갈 때, 결국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충분히 잘 해냈을 때는 모종의 성취감이 들기도 했다. 그럴 때 집 가는 지하철에서는 매우 피곤했다. 멍하고 피로가 쏟아졌다. 원치 않는 일에 에너지를 다 써야만 했을 때는 그만큼 소진도 빨랐다.
너무 권태로우니 조금이라도 재밌는 일을 찾아보자고 생각도 했다. 그래서 여기 저기 맛있는 디저트 팝업이 들어오면 쉬는 시간에 찾아 다녔다. 하루에 한 순간이라도 재밌는 순간을 만들어보려고. 동료들하고 시덥잖은 수다를 떨며 웃을 때는 그냥 생각 없이 웃었다. 그러면 또 그 순간이 지나갔다.
사실 이 시간들을 겪으면서 내가 얻은 것이 있다면 자기 자신에 대해 좀 더 명확히 보게 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입사 초반만 해도 나는 내가 이렇게 금방 싫증을 느끼고 매번 여기 저기 떠돌아 다니는 삶을 사는 것을 수치스러워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삶을 문제라 봤고, 나이를 먹을 수록 더 그랬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걸 고쳐봐야 하나, 한곳에 정착해야 하나 고민했다.
나는 사실 그런 삶을 사는 것을 지금도 조금 더 선호하는 편이지만, 그에 따라 하루하루를 가득 채웠던 불안정, 또 상상 못할 외로움과 비참함, 끊임 없는 의심들은 지금 생각해도 다시 겪고 싶지 않다. 그리고 특히 이곳은 안정을 추구하는 여성들로 둘러싸인 환경이기에 나의 이런 성향은 절대 수용되지 않을 것 같은 별종 취급을 받았다. 그래서 이제 나를 힘들게 하는 스스로의 성향을 외면하고 평탄한 삶을 살려고 노력해봐야 한다고 스스로를 나무랐다.
그래서 누군가 내게 사람이 정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일장연설을 늘어놓을 때, 내 세포부터가 거부하는 느낌이 드는데도 일단 한 번 잘 들어보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기서는 꼭 삼 년을 채워보자고. 그래야 나도 그만큼을 인내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기 확신을 가질 수 있지 않겠냐고.
그러나 이제 이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된 것은, 뭐가 옳고 틀린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것.내가 이 삶을 정신적으로 지루해하는 것을 넘어 정말 속이 역한 느낌이 들고 이곳이 망해서 해체되면 난 자유로워지겠지 하는 상상까지 하는 것을 보고는 생각했다. 아, 세차게 흐르는 물을 절대로 막아둘 수 없구나. 막으면 막을 수록 그 물은 더 거대하게 댐을 부수고 휘몰아치려고 하는구나. 그 물을 무작정 막아버릴 것이 아니라 그 물이 잘 흐를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주는 법을 아는 게 더 중요하다.
지금 당장 떠나겠다는 말은 아니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 가는 게 맞긴 한 건지. 자꾸만 아직 때가 아니라고 내 직관이 잡아 끄는 느낌이다. 두려워서일까? 무언가 내가 배워야 할 것이 더 남아있기 때문일까? 그 이유는 모르겠다.
예전같았으면 뒤도 안돌아보고 떠났을 정도의 감정의 무게에서 이렇게 꼭 버티고 서서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과거에 그렇게도 싫어했던 안정감의 가치를 조금은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경제적 안정감, 회사에 대한 소속감, 아침에 갈 곳이 있다는 느낌, 규칙적인 생활… 그리고 안정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한심하게만 보지 않는 마음. 그건 큰 수확이다. 이 세상에 한쪽만이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는 경우는 없으니까. 어쩌면 나는 정착할 곳을 누구보다 간절하게 원하는 사람이라서 끊임 없이 이동하며 내가 머물 곳을 찾아 다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난 그렇게 살면 못 견딜 거야.”
“뭐? 새로운 곳 구경하기 좋아하면서.”
“그렇지. 근데 구경하고 집에 가는 것도 좋아. 그래서 이런 여행이 특별한 거 아냐? 집에 돌아갈 수 있으니까. 집이 뭐 어때서?”
넷플릿스 영화 <우리의 열 번째 여름> 을 보다가 이 대사가 내 마음을 건드렸다.
안정을 두려워해서 떠도는 삶은 그 자체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고 무조건 안전함만 추구하는 삶도 마찬가지다. 양극단의 가치를 모두 이해하고 내가 직접 선택을 내릴 수 있을 때, 그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