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 짜리 긍정
아주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과 교류할 기회가 있었다. 컴컴한 곳에 누워서 인생의 의미를 곱씹고 자꾸 결핍된 것을 생각하곤 하는 나는 그 사람의 단순함이 불편했다. 그 사람은 무탈함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매일 똑같은 일상이 가장 좋은 거라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화목이자 단결이며, 그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것은 때로 이기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긍정이라는 좋아보이는 가치도 그 반대편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면 그 또한 하나의 감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복잡성, 질투, 분노, 위험, 갈등, 불확실함 등을 무조건 죄악시한다면 결국 반쪽 짜리 인생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가정이나 조직이나 무조건 좋기만 하거나 밝기만 한 것은 없기에 내가 밝은 사람이라면 주변 사람들이 내가 외면한 그림자를 짊어지며 균형을 맞추고 있을 수도 있다.
그 사람은 마치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 에서 싱클레어가 자랐던 밝고 안전하고 화목한 가정을 인간화한 것 같았고, 나는 여러 면에서 그 사람과 반대되는 경향을 띠고 있었다. 개인주의적이고,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하는 경험을 즐기고, 변화가 없는 삶은 좀처럼 견디지 못한다. 그 사람 앞에서 나를 드러내는 것을 멈추게 되었고 소극적인 반응 정도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아마 내가 그런 이야기들에 공감하지 못하고 그렇게까지 불편했던 이유도, 나 역시 그 사람과 반대되는 측면으로 너무 치우쳐서 생각하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안정과 권태, 대중적인 것과 단순함을 거의 죄악시해왔던 나니까.
서로 다른 두 세계가 서로의 언어와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제대로 섞이지도 못한 채 서로의 인생에 이질감을 느끼며 다소 어색하게 공존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나도 결국 그 사람의 말을 인정할 수 있게 될 때 그게 내게 있어서는 큰 발전일 것 같다.. 요즘 내 인생의 경향을 보면, 그동안 내가 터부시했던 가치들을 가르쳐주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다. 내 사고방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 곳에서 처음에는 너무 갑갑하고 내가 속할 곳이 아닌 것 같고,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불편했는데,
시간이 지나며 나도 그 사람들이 중요시하는 가치들을 하나 둘 경험해보게 되고, 나 역시 꽤나 그것들을 좋아한다는 걸 느끼게 되면서 인생에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수많은 선택의 가능성이 있다는 걸 배우게 된다. 십 년 후에는 생각지 못한 남자와 결혼을 해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살아가는 모습일 수도 있고, 같은 직장에 십년, 이십년 다니는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다. 살면서 그다지 바라본 적은 없는 모습들인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의 타고난 형태를 부정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아니고, 나를 그 모습 안에만 가둘 필요가 없다는 걸 요즘 배우고 있다. 도대체가 익숙하지 않은 방식을 내 삶에 우겨넣어 보며 가끔은 때려치고 싶어지는 나에게 내게 긍정의 천사가 왔나 보다. 그래서 자꾸 웃는 얼굴로 반쪽 짜리 긍정을 설파하나 보다.
잘 교류한다면 서로에게 없는 것을 가르쳐줄 수 있는 관계일텐데, 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할지 나는 모르니, 일단 나부터 그 쪽 언어를 배워봐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