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가 아주 단순하게 아무런 요구 없이 운명에 자신을 내맡긴다면 그 편이 더 위대한 일일 거야. 더 올바른 일일 거야.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어. 그건 내가 할 수 없는 유일한 일이지. 어쩌면 자네는 언젠가 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운명에 자신을 내맡기는 건 어려워. 그건 세상에서 유일한 진짜 어려움이라네. 이보게. 나는 자주 그 꿈을 꾸었지. 그러나 그럴 수 없어. 그 앞에서 몸서리쳐. 나는 그렇게 완전히 벌거벗은 채 외롭게 서 있을 수 없어.
자신의 운명 말고는 정말로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자. 그에게는 그때부터 자기 비슷한 사람이 없어. 완전히 홀로 서 있지. 주위에는 오직 차가운 우주 뿐이지.
모든 사람에게 진실한 직분이란 단 한 가지였다. 즉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사람들은 결국 시인 혹은 광인이, 예언가 혹은 범죄자가 될 수도 있었다. 그것은 관심 가질 일이 아니었다. 그런 것은 궁극적으로 중요하지 않았다. 누구나 관심 가져야 할 일은 아무래도 좋은 운명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는 것이며, 운명을 자신 속에서 완전히 그리고 굴절 없이 다 살아 내는 일이었다. 다른 모든 것은 반쪽의 얼치기였다. 시도를 벗어남이고, 패거리의 이상(理想)으로의 재도피이고, 자기 자신에 대한 무비판적 적응이자 두려움이었다.
세계에 무언가를 주겠다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었다! 각성된 인간에게는 한 가지 의무 외에는 아무런, 아무런, 아무런 의무도 없었다.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 속에서 확고해지는 것, 자신의 길을 앞으로 더듬어 나가는 것. 어디로 가든 마찬가지였다.
누구에게나 하나의 ‘직분’이 있지만, 누구도 직분을 자의로 택하고 고쳐 쓰고 마음대로 주재해도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내가 그런 모든 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단언해도 나를 믿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무슨 힘이든 다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기이했던 것은 그가 자주 놀랍고도 멍청한 질문들을 들고 나를 찾아온 것이 바로 내 마음속에서 어던 매듭 하나가 풀려야 할 때였고 그의 변덕스러운 착상들과 관심사들이 나에게는 자주 화두이자 해결의 실마리가 되었다는 점이다. 충직한 그가 귀찮아 종종 보내버리면서도 그 또한 나에게 보내진 사람임을 나는 느꼈다. 내가 그에게 준 것이 갑절이 되어 그에게서도 나와 내 마음속으로 되돌아옴을, 그 또한 나에게는 하나의 인도자이고 하나의 길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그 속에서 자신의 구원을 찾고 나한테 들고 오는 놀라운 책들과 글들은 나에게 내가 순간에 통찰할 수 있었던 것 이상의 가르침을 주었다.
그러나 모든 대화가, 가장 진부한 대화마저도 나직하고 꾸준한 망치질로 내 마음속의 한 점을 계속 두드렸다. 모든 대화가 나의 형성에 도움이 되었다.
수백 가지 일에서 조숙하고, 다른 수백 가지 일에서 몹시 뒤처지고 무력했다. 때때로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면 자주 우쭐하고 교만했으나, 꼭 그만큼 자주 의기소침해하고 굴욕스러워했다. 어떤 때는 자신을 천재로 생각하는가 하면 어떤 때는 절반쯤 돌았다고 생각했다.
내 귀에는 이전 세계들의 폐허를 뒤지는 고달픈 탐색의 소리로 들렸다. 그리하여 문득 나는 이 모든 방식, 이런 신화 예배, 전승된 신앙 형식을 모자이크처럼 짜 맞추는 유희에 거부감을 느꼈다. ”피스토리우스” 내가 갑자기 말했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악의가 담겨 있었다. “제게 다시 한번 꿈 이야기를 들려주셔야겠어요. 밤에 꾸신 진짜 꿈 이야기를요. 지금 말씀하시는 것, 그건 참 빌어먹게 골동품 냄새가 나네요!”
내가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그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 자신도 말하는 바로 그 순간에 번개같이, 내가 그에게 쏘아 버리고 그의 심장을 맞힌 화살이 그 자신의 무기고에서 꺼낸 것이었음을 수치와 충격으로 느꼈다. 그가 냉소적 음색으로 이따금씩 내뱉던 자기 비난의 어휘들을 이제 악랄하게도 내가 그에게 한껏 극단화된 형태로 던졌던 것이다.

